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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포반장

게시일
2022/12/26
할아버지는 1950년대 말에 전방에서 군생활을 했다. 그는 박격포 포반의 관측병(op)이었는데, 포대의 선임들 자체는 열악했던 그 시절에 어울리지 않게 서글서글하고 친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화기애애한 병사들과는 다르게 포반장은 인간쓰레기라고 불리기 충분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미 상사가 되었어야 할 짬이지만 중사였는데, 술을 마시고 민간인을 패서 그랬다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간부들과 어울렸겠는가.
그러니 행정반에서는 고성이 오가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그럴 때마다 포반장은 박격포병들에게 화풀이 를 하였다.
그는 말보다 발이 먼저 나가는 사람이었고, 한번 병사에게 주먹을 내지르면 피를 볼때까지 멈추질 않았다. 맞은 병사가 불쌍해 선임이 감싸줄라 치면 전포를 다 집합시켜 포신과 포다리를 들려 구보를 돌렸다고 한
다.
그가 (관측병)OP를 괴롭히는 법은 따로 있었다. 먼저 OP 사수, 부사수를 지프에 태우고는 무거운 무전 기에 군장을 진 채로 부대 인근의 외딴 산기슭에 던져놓고는 좌표 따라는 핑계로 그대로 버려두고 자기 혼 자 돌아가버리는 것이었다.
그날도 무언가 수틀린 포반장은 박격포 포판에 안 닦인 구리스가 뭉쳤다는 이유로 하나포 분대원 하나를 줘 패고, 하나포 인원들은 포신을 매고 구보를 시킨 채 하나포에 묶여 편제되어있던 OP들은 산기슭에 던져버 리고 홀로 돌아왔다.
OP 부사수인 할아버지와 선임인 사수는 대충 오후 3~4시쯤 되어서야 막사 뒷산에 도착했고, 저 멀리 막 사 뒤편 구식 화장실이 보이자 안도하기 시작했다.
석식점호 전에 복귀하지 못하면 포반장의 폭력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날 따라 화장실 인근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지만, 할아버지와 선임은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그 인근에서 담배를 피우는 병사들은 흔히 볼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중대장은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포반장이 우리를 뺑이돌리고 자기는 숨겨들어온 술을 마시고
토하다가 똥통에 빠져 죽었다는 것이였다. 알콜중독이 있던 포반장이 그런 최후를 맞이했다는 것은 이상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OP 선임은 기시감을 떨칠수 없었다. 포반장이 죽은 시간, 화장실에 모여있던 그 많은 포반 분대원들은 왜 하필 그때 거기에 있었던 것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고는 거의 잊혀졌고, 평범한 포반장이 전입해오면서 포반 분위기는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어느날 밤, 할아버지는 오줌이 마려워 잠에서 깨었다. 둘포 선임이었던 당번병에게 보고하곤 오줌을 누며 담배를 한 까치 피우던 할아버지의 뒤로 어두운 그림자
가 드리웠다. 그 그림자는 하나가 아니었다.
《마.... 니 거거 봤나....?》
둘포 분대장과 선임 두명이 뒤에서 할아버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대답해라. 니 거거 봤나. 니랑 박상빙이랑 봤냐꼬.》
할아버지는 그제서야 그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했다. 그날 화장실에 모여있던 사람들, 연신 피어 오르던 담배연기, 희미한 부러지는 소리 모두 의심을 현실로 만들기 충분하였다.
잠시 침묵이 오갔다. 《아. 그거 말입니까..? 개 잡는 소린줄 알아부렀는디 참말로 개 하날 잡아부리셔서 놀랐지라.》
할아버지의 대답에 선임들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였다. 어둠 속에서 그들이 짓던 묘한 안도의 미소가 할아 버지에게는 공포로 다가왔다.
《아이다. 우리끼리 잡어서 미안하데이.. 빨리 왔으면 니들 몫도 있었는데...》 선임들은 할아버지의 어깨를 두드리며 돌아갔고,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토악질을 하며 저녁에 먹은것을
게워냈다. 그 똥통은 혼자서 토악질을 하는 사람이 빠지기에는 너무도 좁았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그 이후로 담배를 끊으셨다. 담배를 물기만 하면 그날의 일이 생각나셨기 때문이다. 늦은 오후, 개가 된 사람이 사람이 된 개들에게 둘러쌓여 있던 그 날의 일이 말이다.